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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의 ‘전통’과 디지털 기술의 ‘현재’, 그사이에 서다 – 안무가·연출가 송해인 2016-10-06

굿의 ‘전통’과 디지털 기술의 ‘현재’, 그사이에 서다 – 안무가·연출가 송해인
 


▲ 필자와 송해인 안무가·연출가 © 이강혁

▲ 필자와 송해인 안무가·연출가 © 이강혁

<미여지뱅뒤>는 2016 서울아트마켓의 ‘팸스초이스’ 다원 분야에 선정되었습니다. 제목에 담긴 뜻이 궁금한데요.

미여지뱅뒤란 이승과 저승 사이의 시공간을 뜻하는 제주 방언이에요.

이러한 제목을 붙인 이유가 무엇인가요?

제주큰굿(제주무형문화재 제13호)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4년 전부터 이것을 바탕으로 작품을 만들고 있습니다. 오늘날은 언제든 소통할 수 있는 시대이지만 인간은 고독하고 외롭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굿과 같은 치유의 축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여지뱅뒤>는 문화창조융합센터 융·복합콘텐츠 공모전(2015)에서 당선되기도 했는데요, 굿에 디지털 영상 기술을 접목한 이유가 무엇인가요?

미여지뱅뒤처럼 존재하되 존재하지 않는 장소가 ‘빛’이 만드는 인터넷의 가상세계와 비슷하게 느껴졌습니다.

<미여지뱅뒤>의 연출과 안무를 맡은 송해인은 국립국악중·고등학교에서 한국무용을,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창작과에서 안무를 공부했다. 현재는 영국 브루넬대학(Brunel University)의 박사과정에 재학하며 컨템퍼러리 및 디지털 공연예술에 대해 연구 중이다.

“한국무용을 공부하면서 이 춤에 담긴 서양무용의 영향을 적지 않게 느꼈어요. 그래서 한국무용의 원형과 장단이 궁금했습니다. 그러던 차에 채상소고춤으로 유명한 김운태 선생님을 따라 제주도로 내려갔어요. 풍물굿과 전통 소리를 배웠고, 마로의 멤버들을 만나며 제주큰굿을 알게 됐습니다. 3개월 정도 생각했는데, 3년간의 배움으로 이어진 것이죠.”

제주도에서의 새로운 눈뜸과 (사)전통공연예술개발원 마로(이하 마로) 멤버들과의 인연을 계기로 송해인은 <미여지뱅뒤>를 만들었다.

디지털 영상 기술을 사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한국무용을 응용한 작품은 ‘나의 춤’이지만 ‘한 나라의 민속무용’으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더라고요. 반면 디지털을 바탕으로 한 미디어 문화는 민속문화보다 배경에 크게 구애받지 않는 글로벌한 매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늘날의 주된 문화인 디지털 기술을 통해 제주큰굿이 많은 이들에게 과거에 비해 수월하게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예술가에게 제주도란 어떤 곳인가요?

한국에 오면 늘 제주도에 머무르면서 작업합니다. 숨은 예술가들이 많은 곳이에요. 함께 하는 마로의 합숙소는 서귀포 표선면이라는 곳에 있는데요, 앞에 바다가 펼쳐져 있고 나무와 바람의 느낌도 육지와 다릅니다. 이러한 환경들이 저 자신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마로의 멤버들은 전통 굿을 깊이 연구하는 이들인데요, 매일의 연습과 이를 통해 전통 속에 있는 새로운 것을 깨달아가고 있습니다.

굿에 내재한 연희적인 성격과 장단 등을 창작물에 모티프로 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과정에서 경기도나 동해안 별신굿 등이 다수를 차지하는데요, <미여지뱅뒤>의 모티프인 제주큰굿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보름 동안 밤낮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굿입니다. 경기도 굿의 장단을 입고 춤을 추면 그 음악에 담긴 화려함이 몸으로 느껴집니다. 하지만 제주큰굿은 연물(제주큰굿에 쓰이는 북, 징 등의 악기를 총칭하는 말) 장단과 가락이 단순해요. 음악과 무가(무당이 구연하는 사설이나 노래)도 단순히 반복되며 굿을 이끌어나갑니다. 현재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굿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이 얘기인 즉, 전승 과정에서 화려하게 발전한 다른 굿들과 달리 단순하고 소박하고 간결하다는 말입니다. 그러면서도 강한 힘이 있죠. 

굿은 한 편의 드라마라고 생각해요. 무당이 부르는 무가가 그런 역할을 하죠. <미여지뱅뒤>에도 어떤 스토리가 담겨 있나요?

제주큰굿에는 많은 신화가 녹아 들어가 있어요. 하지만 제주도의 문화와 방언에 익숙지 않은 저로서는 마냥 건드릴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주큰굿의 기본적인 의례들이 서사를 만들어요. ‘문열림’에서 신을 부르고, ‘추물공연’에서 제물(祭物)을 던지고, ‘푸다시’에선 한과 액을 푸는, 이런 방식이죠. <미여지뱅뒤>는 한 사람이 이러한 의식을 치르는 과정을 보여주는 데 중점을 두었어요. 사실 관객들의 참여도 끌어내고 싶지만, 프로시니엄 무대에는 늘 제약이 많은 것 같아요.

굿은 해피엔딩에 속하죠?

그렇죠. 한과 액을 풀어내잖아요. 

▲ <미여지뱅뒤> © (사)전통공연예술개발원 마로

▲ <미여지뱅뒤> © (사)전통공연예술개발원 마로

송해인은 마로와 함께 2013년에 <이어도-더 파라다이스>를 선보였다. 제주큰굿과 제주도 이어도 설화를 모티프로 한 이 작품으로 3년 동안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에 참가했다.

“제주에선 옛날에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사람이 있으면 생을 마감했다고 생각하지 않고 이어도에서 행복하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다고 해요. 이어도는 이런 자들의 안식처 같은 곳이죠.”

이승과 저승 사이를 뜻하는 <미여지뱅뒤>, 안식처와 같은 <이어도-더 파라다이스>. 두 작품 모두 우리에게 낯선, 아니 낯설 수밖에 없는 공간을 배경으로 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래서 송해인의 작품에서 공간은 중요한 의미이자 주인공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오늘날에는 증강현실, 가상현실 등의 수많은 ‘현실’이 존재하잖아요. 이러한 현실을 만들고 움직이는 현대인이나, 다른 시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한을 푸는 무당이나 어느 면에선 서로 닮지 않았나 생각을 할 때가 있어요.”

굿은 노래(歌)·춤(舞)·음악(樂)이 어우러진 종합예술이고, 디지털 맵핑과 인터랙티브 기술 등도 시·청각이 어우러지는 총체적인 성격이 강합니다. 두 소재를 연결하는 과정에서 힘든 점은 없었나요?

<미여지뱅뒤>의 디지털 기술은 굿의 한 부분을 표현하기 위한 부분적인 기술로 도입했습니다. 사람 모양을 한 종이무구인 ‘기메’나, 놋쇠로 만든 둥근 거울 형태로 무당이 신의 얼굴로 간주하는 ‘동경’(혹은 명도(明斗)) 등을 굿의 도구(巫具)로 사용합니다. 제주큰굿의 우주와 세계를 대변하는 상징물들이죠. 디지털 기술도 굿을 이루는 도구로써 사용할 수 있겠다 싶었고, ‘전체의 부분’으로 가져갔기 때문에 두 요소가 크게 상충하는 부분은 없었습니다. 다만 전통에 중심을 둔 분들은 새로운 것들을 받아들이는 것에 조심스러워요. 그래서 저 역시 조심스러웠고, 각자 이해하는 시간이 필요했습니다.

근래에 들어, 굿의 전승에서 젊은 세대가 중심이 되면서 문화의 융·복합에 익숙한 그들의 감수성에 따라 굿을 다른 장르와 접목하기도 하고, 이러한 실험과 작품들에 명인들과 큰 스승들이 직접 출연하여 ‘힘’과 ‘의미’를 실어주기도 한다. <미여지뱅뒤>에도 송해인과 함께 서순실 심방이 직접 출연한다(심방이란 제주도에서 무당을 일컫는 말이다).

“사실 이러한 작업들이 그 분께 실례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서순실 심방은 제주큰굿을 알려야겠다는 의지가 강한 분으로, 저의 작업에는 늘 오픈마인드로 도움을 주세요.”  

<미여지뱅뒤>로 팸스초이스에서 30분 동안 쇼케이스를 갖습니다. 이를 통해 이루고 싶은 계획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제주큰굿을 공부하면서 해외보다도 육지, 즉 서울을 뚫기가 더 어렵다는 생각이 들곤 했어요. 제주도의 예술단체에 대한 편견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서 에든버러 프린지 페스티벌 등의 해외를 경로하기도 했어요. 60분 분량의 작품인데, 주어진 시간은 30분. 저는 서울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저에겐 서울에서의 첫 무대입니다. 이번을 계기로 <미여지뱅뒤>와 같은 작품을 선호하고, 여기에 잘 맞는 페스티벌을 모색하고 싶어요. 사실 에든버러에 입성할 때도 춤·무용·소리 등 어느 장르로 분류해야 할지 고민을 많이 했거든요. 그래서 이런 장르를 선호하는 페스티벌이나 디렉터들과 연결됐으면 합니다. <이어도-더 파라다이스>를 해외에 올렸을 때 외국인들은 한국의 굿에 대한 ‘편견’이 없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어요. 

▲ 송해인 안무가·연출가 © 이강혁

▲ 송해인 안무가·연출가 © 이강혁

서울아트마켓 이후의 계획은 무엇인가요?

현대인의 정신적 치유에도 관심이 많아요. 한국의 굿과 런던에서 접한 테라피아트(Therapy Art)와 결합할 예정입니다. ‘치유’라는 면에서 굿과 공통되는 점이 많거든요.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심방(무당)이 된 이들이 많은데, 테라피스트들도 그런 경우가 많더라고요. 11월에 서순실 심방, 마로와 함께 런던대의 SOAS(The School of Oriental and African Studies)에서 제주큰굿 공연을 한 뒤에, 관객·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을 가집니다. 또 다른 하나는 한국과 영국의 예술가 교류 작업의 일환인데요, 영화음향감독인 로데릭 스피킹과 함께 공연을 위한 리서치를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 역시 테라피스트로 활동하고 있고요. 잘 되면 합동공연으로 발전시킬 계획입니다.

  • 기고자

  • 송현민 (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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