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음악의 '가능성'을 탐색하다
서정민갑_대중음악의견가
2023 젊은국악 단장 김기범, 농악천하지대본, 노은실 ⓒ주현우
올해는 서울남산국악당의 기획공연 ‘젊은국악 단장’을 협력 쇼케이스로 진행하고, 서울아트마켓 팸스초이스에서도 전통음악인의 공연을 협력 프로그램으로 진행함으로써 국내외 델리게이트들이 저니에서 자체적으로 선정한 ‘저니초이스’ 외에도 최대한 많은 한국 전통음악인의 공연을 접할 수 있도록 기획했다. 매년 가을 2~3일간 열리는 이 프로그램을 놓치지 않고 관람하면 최근 어떤 전통음악인이 주목받고 있는지, 그들의 현재 기량과 지향이 어떠한지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
서울남산국악당 야외마당
노은실 ⓒ2023저니투코리안뮤직
국내외를 오가며 활동 중인 노은실은 이날 기타리스트 알바로 헤란, 대금연주자 백다솜, 사운드를 맡은 해미 클레맨세비츠와 함께 30분의 공연을 수행했다. ‘앰비언트 판-소리’를 내건 노은실의 공연은 제목처럼 자신의 목소리와 연주를 앰비언트 사운드와 결합시켰다. 노은실이 인형을 비롯한 오브제를 무대에 펼쳐놓고 노래할 때, 그의 노래에는 즐거움이나 흥겨움은 배제되었다. 대신 고요와 정적으로 잠입해 그 안에서 유영하는 듯한 소리의 드라마가 이어졌다. 조도를 낮춘 조명 아래에서 기도하듯 이어진 음악의 밀도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흩어지지 않았다. 30분 내내 한결같은 분위기를 이어갈 만큼 곡과 연주, 퍼포먼스는 단단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노은실의 목소리에는 오랫동안 노래해온 이의 원숙함이 배어났다. 서정적이고 극적이며 영적인 기운이 넘쳐나는 공연은 전통음악이 담지한 근원적 신비로움을 극대화했다.
하지만 노은실의 공연은 새롭거나 독창적이지 않았다. 이미 많은 월드뮤직에서 선보였던 방식으로 현악기와 관악기를 연주하면서 공간감을 극대화하고 그 위에 전통음악적인 보컬을 얹는 음악은 유사한 음악들 사이에서 노은실의 음악을 구별하기 어렵게 만들었다. 한국음악이라는 차이를 명확하게 드러내지 않은 음악은 숙련된 퍼포먼스로 공연에 빠져들게 했음에도 해외 델리게이트들에게 얼마만큼의 반향이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
김기범 ⓒ2023저니투코리안뮤직
농악천하지대본 ⓒ2023저니투코리안뮤직
연희집단 농악천하지대본은 연희집단의 공연다운 역동성이 돋보였다. 젊은 연주자들이지만 수많은 무대와 활동을 경험한 이들답게 연주는 자연스러웠고, 다양한 장단과 진풀이를 연결하는 기교는 능수능란했다. 다만 이들의 연주와 연희에서 전통음악 공연다운 질박하고 묵직한 느낌을 발견하지는 못했다. 연주를 잘하고 서로의 호흡이 잘 맞는 것만으로는 채울 수 없는 공백이 느껴지는 이유는 무엇 때문이었을까.
전통음악의 뿌리로부터 올린 ‘창조적 차이’의 무대들
황진아 ⓒ2023저니투코리안뮤직
서울남산국악당 협력 쇼케이스 외에도 ‘저니초이스’로 열린 황진아의 공연(10.12‧서울남산국악당)도 만나볼 수 있었다. 해외 델리게이트들에게 높은 관심을 끌었는데, 혼자 무대에 올라 거문고, 양금, 미디프로그램을 모두 도맡아 연주한 황진아는 모든 연주에서 루프 스테이션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혼자 무대에 올라서도 충분히 다채로운 사운드를 연출하고자 하는 전략으로 보이는데, 덕분에 황진아의 다재다능을 충분히 보여주었지만, 동일한 사운드를 지속적으로 반복하는 방식은 라이브 연주의 생동감을 떨어뜨렸다. 영상을 맡은 아티스트와 협업하면서 더 나은 공연을 선보이려 한 노력은 인상적인 순간을 만들지 못하는 작곡으로 인해 빛을 잃었다.
4인놀이 ⓒ2023저니투코리안뮤직
더튠 ⓒ2023저니투코리안뮤직
힐금 ⓒ2023저니투코리안뮤직
‘저니초이스’의 둘째 날인 10월 13일 서울남산국악당에 오른 더튠과 힐금은 30분 내외의 시간 동안 보여줄 수 있는 팀의 가장 뜨거운 순간만 보여주기로 마음먹은 것처럼 보였다. 더튠의 공연은 에너지를 끌어올려 펄펄 끓는 모습을 발산하는 데 주력했다. 힐금 역시 ‘스모키 사운드’라는 사운드 메이킹을 이어감으로써 그룹에 대한 강한 인상을 심어주었다. 30분이라는 한정된 시간을 꽉 채운 공연의 연속이었다.
적지 않은 활동 기간을 증명하듯 음악인들의 연주와 영상은 모두 수준급이었는데, 그럼에도 이 가운데 남다른 소리의 세계를 완성한 이들은 드물었다. 다만 기세와 간절함은 충분했다. 그렇다면 지금은 비슷한 이야기를 계속하더라도 언젠가는 다른 음악, 다른 세계를 만나게 해주지 않을까. 그때까지 계속 성실한 관객이 되고 싶다.
* 본 기사는 서울남산국악당 웹진 산:문과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정보 플랫폼 더아프로(TheApro)에 공동 게재된 기사입니다.
서정민갑 서정민갑은 대중음악의견가로, 음악의 아름다움이 구현되는 방식과 사회적 역할에 특히 관심이 많다. 저서<그렇다고 멈출 수 없다> <음악열애> <누군가에게는 가장 좋은 음악> <음악편애-음악을 편들다> <밥 딜런, 똑같은 노래는 부르지 않아>가 있고, <대중음악의 이해> 등을 함께 썼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