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프랑스 공연예술계의 충일한 만남을 위하여
인터뷰어: 이화원_연극평론 편집장,
조만수_충북대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인터뷰이: 프레데릭 마젤리_라 빌레뜨 예술감독,
디디에 쥬이야르_오데옹-유럽의 극장 프로그래밍 디렉터
이화원: 한국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두 분의 체류 일정이 빡빡하여 이처럼 함께 모시고 인터뷰를 진행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한국연극평론가협회의 계간지 『연극평론』의 편집장을 맡고 있는 이화원입니다.
조만수: 반갑습니다. 저는 연극평론과 드라마투르기 활동을 하고 있는 조만수입니다. 오늘 이화원 편집장님과 함께 인터뷰를 진행하고자 합니다. 우선 두 분의 소개 부탁드립니다.
마젤리: 저는 프레데릭 마젤리(Frédéric Mazelly)이고 라 빌레뜨(La Villette) 예술감독입니다. 라 빌레뜨는 파리 북동쪽 드넓은 라 빌레뜨 공원에 위치한 국립공연예술기관입니다. 한국에 와 본 적 있습니다. ‘서울아트마켓(PAMS)’은 아니고, 오페라 때문에 10년 전쯤 왔었어요. 아시아에 종종 오지만, 몇 년 전부터는 오지 않았죠. 코로나 때문에 60회 출장을 유럽으로 다녔고, 작년부터 해외 다니며 공연 관계자들과 교류를 다시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시아와도 교류가 있지만 물론 유럽에 비하면 아직 초기 단계입니다. 유럽 연출가들이나 안무가들과는 이미 많은 일들을 하고 있지요.
쥬이야르: 제 이름은 디디에 쥬이야르(Didier Juillard)입니다. 8년 전부터 오데옹-유럽의 극장(Odéon-Théâtre de l’Europe)의 프로그래밍 디렉터 직을 맡고 있습니다. 오데옹의 예술감독인 스테판 브론슈바이그(Stéphane Braunschweig)와는 이전부터 스트라스부르그 국립극장과 파리콜린 국립극장에서도 함께 일을 했었습니다. 2016년부터 오데옹에서 근무하고 있으며, 오데옹에서 제작하거나 공동 제작한 공연의 프랑스 국내 및 해외 배급도 담당하고 있습니다. 코로나로 지난 3~4년간 해외 출장이 끊겼었는데요, 그 전에 저는 2018년, 2019년 아시아에 왔었고, 중국 프로덕션팀을 파리에 초청하기도 하고, 폴란드 연출가 크리스티안 루파(Krystian Lupa)도 초청했죠. 스테판 브론슈바이그가 만든 몰리에르 작 <아내들의 학교(L'École des femmes)> 투어를 홍콩, 베이징, 상하이, 항저우에서 기획하기도 했는데 모두 취소가 되었어요. 몇 달 전부터 중국과의 교류가 재개되고 있어요. 올여름 아비뇽에 아시아 공연 관계자들이 많이 왔었죠. 봄에는 다시 대만에도 다녀오고, 연락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아시아 공연을 오데옹에 올리거나 프랑스 투어를 기획하려면 여러 장소를 일관성 있게 찾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지속 가능 발전을 위해 한 공연을 초청하고 2번만 공연하고 끝낼 수가 없기 때문에 사전에 준비를 많이 해야 합니다. 마찬가지로 우리 공연을 해외에 선보이고 싶을 때도 한 도시가 아니라 두세 도시를 가려고 합니다. 대만과 연락하면 한국도 이어질 수 있고 중국, 홍콩과 다시 연락을 재개하면서 우리가 제작한 작품이나 공동 제작을 2024년이나 2025년 프로그램에 넣을 수 있는지 가능성을 보고 있어요. 마찬가지로 미리 외국의 공연들을 발견해서 유럽 여러 국가의 공연 투어 가능성을 보고자 합니다. 현재로서는 중국이나 대만, 싱가포르와의 프로젝트들의 가능성을 탐색 중입니다.
조만수: 오데옹 팀에서 한국에 한 번 온 적 있었어요. 올리비에 피(Olivier Py)가 극장장이었을 때요. 아이들을 위한 공연이었죠.
한국 방문의 목적과 경험
이화원: 어제 ‘서울아트마켓’의 여러 행사들과 더불어 컨퍼런스가 열린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번 방문의 목적은 무엇이고 현재까지 무엇을 보셨고 느끼셨는지요?
마젤리: 저는 어제 도착해서, 어제 ‘서울아트마켓’의 컨퍼런스에서 라 빌레뜨를 소개했고, 그 후에 공연 두 편 보았어요. 방금 전에는 전통 공연을 한 편 보았죠. 오전에는 미팅이나 한국이나 아시아 공연 종사자, 예술가들과의 만남이 주로 이룹니다. 홍콩이나 방콕, 말레이시아에서 오신 분들이 많이 있었는데 확실히 유럽에서는 자주 만날 기회가 없는 나라에서 오신 분들이었죠.
조만수: 이번에 한국 공연을 발견할 기회가 되겠네요?
마젤리: 오늘 저녁 볼 예정인 공연 <쿠쿠(Cuckoo)>는 이미 알고 있던 것인데요, 유럽에 자주 오는 팀이라서요. 이 공연은 아니지만 구자하 연출의 다른 공연들이 유럽에 종종 소개되어 알고 있었습니다. 구자하가 네덜란드에 기반을 두고 있어, 다른 유럽 축제에서 볼 기회 있었어요. 올해 처음으로 한국 현대무용 단체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를 프로그램에 넣었습니다. 2020년 공연 예정이었는데, 코로나로 취소되었고, 2023년으로 연기한 공연이죠. 지난 4월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쳤어요. 반응이 좋아서 프랑스 파트너들과 투어를 이어 나갔어요. 좋았습니다.
쥬이야르: 저는 1년 전 파리, 런던, 대만에서 만난 최석규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예술감독이 이번 ‘서울국제공연예술제’에 초청해주셔서 한국에 처음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체류 기간 동안 많은 공연을 보고자 합니다. 오늘 아침에는 LG아트센터와 미팅도 했고 한국 공연장을 둘러보며, 어떤 프로젝트가 있는지 보러 왔습니다. 앞으로 유익한 교류를 이어나가고자 합니다.
소속 기관에 대한 소개
조만수: 두 분이 소속되어 있는 공연 기관에 대하여 좀 더 자세히 소개해 주시기 바랍니다.
마젤리: 라 빌레뜨는 다양한 분야를 다룹니다. 연극 외에도 무용, 음악, 복합 예술 등 다른 예술 분야도 많이 다루고 있습니다.
쥬이야르: 오데옹에서는 몇몇 예외가 있지만 텍스트를 기본으로 하는 연극이 우선순위입니다. ‘유럽의 극장’이라는 이름처럼 유럽의 대표적인 국립극장입니다. 유럽으로부터 시작해 이제는 세계로 열려 있죠. 파리에는 다양한 국립극장이 있는데 콜린(Colline)은 현대 연극을, 지난주 한국에서도 공연을 선보인 샤이오(Chaillot) 극장은 무용을, 코메디 프랑세즈(Comédie Française)는 전문적인 연극을 무대에 올립니다. 개인적으로 파리에서 본 작품 외에는 한국 연극을 잘 모릅니다. 오늘 저녁 한 편을 보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밖에 콜린 국립극장에 한국의 안은미 안무가의 작품이 온 적이 있죠.
이화원: 코메디 프랑세즈에 비해서 오데옹은 현대 연극에 더 열려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쥬이야르: 코메디 프랑세즈의 특성은 프랑스에서 유일하게 상주 극단이 있는 극장이라는 점입니다. 배우들이 돌아가며 코메디 프랑세즈 공연을 하고, 외부에서 초청은 하지 않습니다. 오데옹에는 상주 연기자가 없고, 우리가 제작하거나 공동 제작한 작품을 위해 예술가들과 배우들이 모여서 공연을 하고 투어를 하죠. 한 달 뒤에 새로운 작품을 올립니다. 상주 극단이 있는 극장은 코메디 프랑세즈가 유일합니다.
조만수: 오데옹이 유럽의 극장이라고 불리는데, 스트라스부르그 국립극장도 유럽 극장이라는 타이틀을 갖고 있지 않나요?
마젤리: 아니요, 그곳은 스트라스부르그 국립극장으로만 표기됩니다. 그러나 유럽 극장 회원으로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습니다. 스트라스부르그 국립극장의 특징은 자체적으로 국립 연극학교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곳에서 연기자 뿐 아니라 무대 설계가, 연출가, 무대 의상가, 기술자들을 양성합니다.
조만수: 스트라스부르그 국립극장과 오데옹 국립극장의 미션에는 어떤 차이가 있나요?
쥬이야르: 같은 미션을 수행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스트라스부르그에는 자체 연극학교가 있고 오데옹에는 없죠. 유럽적인 성격은 오데옹이 훨씬 더 강하죠. 오데옹 극장을 1980년대 초자크 랑(Jark Lang) 문화부 장관의 제안으로 오데옹 극장을 ‘유럽의 극장’이라고 부르기 시작했죠. 1980년대 외국어로 된 공연은 매우 드물었었어요. 오늘날은 다르죠. 요즘에는 라 빌레뜨나 바스티유 극장에서 외국어 공연 많이 볼 수 있어요. 오데옹 극장의 특징은 외국 연출가들을 초청해 프랑스 배우들과 작업을 하도록 한다는 것이죠. 올해 크리스티안 루파, 이보 반 호브(Ivo Van Hove), 브라질 여성 연출가 크리스타인 쟈타이(Christiane Jatahy), 호주 연출가 사이먼 스톤(Simon Stone) 등 외국 연출가들 작품을 선보이고 있어요. 샤이먼 스톤은 내년 봄에 이곳 LG아트센터에도 옵니다. 영국 연출가 알렉산더 젤딘(Alexander Zeldin )등 해외 연출가들을 초청해 프랑스 배우들과 작업하면서 각 나라의 작업 방식을 교차시킬 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이런 방식으로 작업하지만 스타니슬라스 노르데(Stanislas Nordey)가 이끄는 스트라스부르그 국립극장은 해외 연출가와의 교류가 거의 없어요. 있어도 2년에 한 번꼴입니다. 스트라스부르그 국립극장의 방침에 따른 것이죠. 그러나 두 극장의 지위는 같습니다. 국립극장으로 유일한 지원을 문화부에서 받고 있죠. 시나 지역 차원의 지원은 받지 않고 있습니다.
두 기관의 공통점과 차이점
이화원: 맡고 계신 기관의 사이트를 통해서 올가을 희랍 비극인 <안드로마케>가 공연될 예정이라는 소식을 접하였는데요. 그리스 신화에 기반을 둔 작품이 이 가을 오데옹과 라 빌레뜨 두 기관 모두에서 올라가고 있네요. 어떠한 공통점과 어떠한 차이점을 가지고 구현될지 궁금합니다.
마젤리: 라 빌레뜨 경우 밀로 라우(Milo Rau)가 연출을 맡았습니다. 스위스 독일계 감독으로 벨기에 겐트에 살죠. ‘오스트리아 빈 축제’ 예술감독이죠. 겐트 국립극장 극장장을 맡았었고 최근 그만둔 연출가입니다.
이화원: 오데옹에서는 스테판 브라운슈바이크가 연출을 맡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두 연출가의 작업 방향과 결과물이 두 기관의 차이점을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지요?
마젤리: 라 빌레뜨에서 올릴 작품은 <안티고네>입니다. 안티고네 비극 원작을 그대로 올리는 대신, 안티고네라는 여주인공으로부터 영감을 받았지만 배경을 새롭게 가져가고 있습니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아마존 산림 벌채, 산림 파괴로 위협받는 상황이 그려지고 있습니다. 주인공이 브라질 아마존에서 자신들의 터전을 장악하는 정부와 기업에 맞서 항쟁하는 이야기입니다. 안티고네는 마을 여성으로 이러한 재앙에 맞서 싸우죠. 실제 자료 조사를 바탕으로 한 르포르타주 같은 작품입니다. 밀로 라우가 현재 주로 하고 있는 작업 방식입니다.
조만수: 장르를 연극으로 볼 수 있을까요?
마젤리: 연극입니다. 무대가 있고 대사가 있어요. 오데옹에서 스테판이 <안드로마케>를 어떻게 각색했는지 모르겠지만, 저희 경우 아마존 부족, 마을 이야기에서 출발하여 극본을 새롭게 썼습니다. 실제 현장에서 겪은 많은 상황들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무대적 글쓰기(écriturede plateau)’라고 할 수 있죠. 연극이지만 브라질 아마존에서 촬영한 영상이 상영이 되어 무대와 어우러지고 등장인물 가운데 일부는 무대에도 등장하고 영상에도 등장하고, 또 다른 일부는 영상에만 나오고 실제 무대에는 오르지 않는 이런 식으로 둘 사이에 연기가 이루어집니다. 무대에 대여섯 명이 있고, 영상에는 온 마을 사람들이 등장하고, 그들과 대립하는 경찰들이 나옵니다. 실제 취재 기자가 촬영한 르포르타주처럼 영상이 만들어졌습니다.
조만수: 이러한 유형의 공연을 라 빌레뜨 프로그램의 특징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마젤리: 2013년 프랑스에서는 처음으로 라 빌레뜨에서 밀로 라우의 작품을 선보였죠. 그 이후로 라 빌레뜨 외에도 낭트 국립극장에서도 공연을 했어요. 이후 다른 장소에서도 작품을 선보였죠. 무대 연출이나 다큐멘터리 같은 무대적 글쓰기가 라 빌레뜨의 특색이라고는 말하지 못하겠지만 관심을 가지고 소개해 온 유형의 공연입니다.
이화원: 라 빌레뜨의 가을 프로그램에 필립 드쿠플레(Philippe Decouflé)의 작품도 보이는데요.
마젤리: 필립 드쿠플레는 또 다른 스타일로서 라발레뜨의 스펙트럼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화원: 공교롭게도 로버트 윌슨(Rober Wilson)의 <해변의 아인슈타인(Einspein on the Beach)>을 새롭게 시도한 수잔 케네디(Susanne Kennedy)의 작품들이 이번 시즌에 라 빌레뜨와 오데옹에 나란히 올라가고 있어 또한 눈길을 끕니다.
마젤리: 네, 이번 가을에 수잔 케네디가 라 빌레뜨와도 오데옹과도 작업을 하게 되었습니다. 작품은 다르지만요.
쥬이야르: 완전히 우연의 일치입니다. 파리의 ‘가을 축제(Festival d’automne)’ 차원에서 이루어졌죠.
마젤리: 사실 <안젤라(Angela)>의 공동 제작도 제안했었는데 여러 이유로 불가능했어요. 두 공연을 초청하는 것은 조금 부담이 되었죠. 결국 <안젤라>는 성사가 되지 못했어요.
쥬이야르: 두 작품이 모두 ‘가을 축제’에서 소개가 된 것이죠.
마젤리: 그렇습니다.
파리 ‘가을 축제’에 대하여
조만수: 파리의 ‘여름 축제(Festival d’été)’를 접해본 적이 있는데 ‘가을 축제’에 대해 좀 더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쥬이야르: ‘가을 축제’가 ‘여름 축제’ 보다 더 오래되었고 규모가 훨씬 큽니다.
마젤리: 파리 ‘여름 축제’는 바캉스 시즌에 진행되는 소규모 축제로 몇몇 극단과 공연으로 구성되죠. 여름이니까 주로 야외에서 진행됩니다. 반면 ‘가을 축제’는 80~100개 정도로 훨씬 많은 작품을 선보이죠.
쥬이야르: 9월에서 12월 사이입니다.
마젤리: 장소가 중요한데요, 파리 시내뿐 아니라 파리 근교, 그리고 일 드 프랑스에서 축제가 열립니다.
쥬이야르: 일종의 라벨로 장소를 공유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제안을 받거나,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가을 축제’에서 수잔 케네디를 집중 조명 하고 싶어 했어요. ‘가을 축제’ 공연으로 라 빌레뜨가 수잔의 작품을 올리는 것을 알고 있어서 오데옹에서는 <안젤라>를 제안했죠.
두 기관의 프로그래밍 방식과 절차
조만수: 두 분은 예술경영지원센터의 초청으로 한국에 오셨는데 한국 예술가들이 프랑스 극장들이 어떤 방식으로 프로그래밍을 하고, 어떤 절차를 거치는지 궁금하실 것 같아요. 두 극장에서 프로그래밍하는 절차에 대해, 언제 접촉을 시작하고 언제 확정이 되는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마젤리: 한국뿐 아니라 다른 곳도 다 마찬가지인데요, 우선 공연을 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공연을 보는 것이 출발점이죠. 그 이후에 진행이 되기도 하고 안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공연을 보지 않고 미팅을 통해 프로그래밍하는 경우는 매우 드문 예외적인 경우입니다.
쥬이야르: ‘서울아트마켓’에서 오전 미팅만 하고 어떤 작품을 프로그래밍 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습니다. 영상이 아닌 실제 공연을 봐야 하죠. 공연을 보면서 우리가 속한 극장의 예술 사업에 비추어 보았을 때 프로그래밍 하는 것이 의미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무용 공연을 보고 개인적으로 환상적이라고 느낄 수 있겠지만 프로그램에 넣지는 않을 것입니다. 어린 관객을 대상으로 하는 공연이나, 거리 공연 또는 뮤지컬 등도 우리 극장 프로그램과는 맞지 않죠. 오데옹 극장은 텍스트 기반의 공연을 선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이후에 강렬하고 독특한 무대 연출 작업이 있죠. 그 이후 프랑스 내에서 투어를 기획하거나 오데옹의 다른 파트너 극장들과 논의를 해볼 수 있습니다. 오늘 저녁에 공연을 볼 기회가 있습니다. 낮에는 연락처를 교환하고 어떤 공연을 볼지 살펴보죠. 그런데 한국에 자주 오는 게 아니라서 올해 성사가 되지 않더라도 일 년이나 이 년 뒤에 다시 올 수 있으니, 흥미로운 극단을 기억해두고 공연을 관람하거나 논의를 나눌 수 있겠죠. 저도 미팅이나 영상을 통해 프로그래밍하지는 않고 반드시 공연을 보고 결정합니다.
한국 예술가들의 진출 가능성
조만수: 프랑스의 큰 국립극장은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에게 접근이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국립극장이나 큰 극장들 말고 한국의 젊은 예술가들이 프랑스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어떤 네트워크를 접촉해야 할까요? 파리에 젊은 재능 있는 예술가들을 환영하는 소극장들이 있나요?
마젤리: 우리는 극장과 공연장 모두 규모가 큽니다. 작은 공연장도 있지만 다른 용도로 사용이 되고 있죠. 하지만 프랑스나 유럽에는 많은 축제들이 있죠. 프랑스로 한정하여 얘기를 하자면 페스티벌을 통해 전 세계 신생 극단들이 자신들의 작업을 선보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현재 마르세이유에서 개최되는 ‘악토랄(Actoral: Festival international des arts & des écritures contemporaines)’의 경우, 세계 여러 극단이나 예술가들이 참여하고 있죠.
쥬이야르: 바스티유 극장도 있습니다
마젤리: 소극장에서 해외 작품들을 선보이지만, 실제로는 유럽 작품이 주를 이룹니다. 예산 때문이기도 합니다.
쥬이야르: 시와 국가로부터 보조금을 받는데 지원금이 많지 않습니다. ‘가을 축제’는 대형 극장이나 소극장, 교외에 있는 극장과도 협업을 해서 규모가 크고 다양한 종류의 공연을 선보이고 있습니다. 오데옹은 750석, 500석 규모의 극장이죠. 며칠 동안 공연을 할 경우 극장이 차야 해서, 젊은 예술가나 신진 예술가들에게 이상적인 공간은 아닙니다. 하지만 파리의 다른 극장이나 렌에서 열리는 페스티벌 등도 있죠. 다양한 레벨의 극장들이 존재합니다. 반면 소극장은 예산이 제한적이라, 공연 비용이 너무 비싸면 안 되고, 지원도 받아야 합니다. 극장 예산은 극장 규모와 연관되어 있습니다.
이화원: 최근 ‘아비뇽 페스티벌’이나 다른 페스티벌에서 눈에 띄는 한국 작품을 접하신 적이 있었는지요?
마젤리: 현재까지 아비뇽에서 본 것 가운데 특별히 기억이 남은 작품은 없었지만 앞으로 보게 되기를 바랍니다. 코로나 상황도 있다 보니 최근 몇 년 동안에는 한국 작품이 많이 소개되지 않았습니다.
조만수: 이번에 한국에서 머무는 시간이 많지 않아, 원하시는 만큼 많은 작품을 볼 시간은 없으실 듯합니다.
쥬이야르: 4일 머물고, 내일도 두 편의 작품을 보니 최소 5편에서 6편의 작품을 볼 예정입니다.
마젤리: 공연계가 워낙 작습니다. 서로 대략적으로 알죠. ‘서울아트마켓’이나 다른 나라에서 만남을 갖습니다. 인맥을 쌓고, 연락처를 교환하죠. 그래서 어떤 극단이나 어떤 예술가가 재능이 있다면 금세 두각을 나타내고, 금방 알게 됩니다. 나는 뛰어난 예술가인데 잘 알려져 있지 않는 경우는 없다고 생각해요. 결국 눈에 띄고, 알게 됩니다. 그 사람이 누군지 알게 되고, 확인을 하게 됩니다. 어디선가 두각을 보이면, 분명히 사람들 눈에 띄게 됩니다.
쥬이야르: 다양한 네트워크들이 있습니다. 취향이 다르고 좋아하는 게 다르니 개인 인맥을 활용해 친근한 사람과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모르는 사람의 프로그램일 경우 작품이 멋지다고 해도 경계하고 보게 되고, 반면 취향을 알고, 친근한 경우 더 주의 깊게 프로그램을 살피게 됩니다. 다양한 자리가 있죠. 인맥이나 네트워크, 예술가들이 방향성이나, 선택을 하는 데 있어서 조언을 하기도 합니다.
마젤리: 조금 극단적인 경우를 예로 들자면, 최근 전통 무용 공연을 제안받았어요.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절대 통하지 않을 제안이죠. 작품의 수준과 질에 상관없이 장르 자체가 맞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파리나 다른 도시의 극장 가운데 다른 나라의 무용이나 전통 연극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파리에서 꽤 오래전부터 열리는 ‘상상 축제(Festival de L’Imaginaire)’는 세계 전통문화에 열려 있습니다. 이곳에서 특색 있는 다양한 연극, 무용, 콘서트 등을 제안하죠. 매번 전통적인 작품을 소개하는데, 그것이 ‘상상 축제’의 사명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런 것이 라 빌레뜨의 미적 방향이나 스타일과는 맞지 않죠.
레지던시 프로그램에서의 작업 가능성
이화원: 라 발레뜨에는 외부 예술가들을 위한 레지던시 프로그램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어떻게 운영되는지요? 장소와 예산 지원 모두가 이루어지는지요?
마젤리: 크지 않은 작은 스튜디오가 많아요. 작업을 할 수 있는 6개의 스튜디오가 있어서 매년 약 100여 개의 극단을 선정해 제공합니다. 연극, 댄스, 힙합, 인형극, 마술 등 분야가 다양해요. 정식 절차에 따라 신청해야 하며, 다른 세 개의 프로그램과 공동 지원하고 있어요. 그 100여 개의 극단이 다 프로그래밍 되는 건 아닙니다. 기술적으로도 불가능하죠. 최종 선정을 통해 일 년에 15개 극단이 시즌별로 무대에 섭니다. 장소뿐 아니라 재정적 지원도 합니다. 작은 예산이긴 한데 보통 2주 기간 정도 지원합니다.
이화원: 우리나라 예술가들이 프랑스 예술가들과 협업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습니다. 공동 제작도 가능할까요?
마젤리: 다른 나라 예술가들이 우리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통해 머무를 수 있지만 협업은 아니고, 공동 제작에 가깝습니다. 재정적 지원을 하기 때문이죠. 예를 들어 브라질에서 온 카롤리나 비앙키(Carolina Bianchi) 연출가가 2월에 레지던시로 처음 와서 작업했고, 이후 2024년 말에 다시 2주 와서 작업을 할 예정입니다. 공동 제작에 가깝죠. 우리는 레지던시를 제공하고, 재정적 지원을 하고, 이후 연출가가 나서서 예술팀을 구성하고 선택하죠. 프랑스 예술가들과 일하라고 요구하지 않습니다. 라 빌레뜨는 오데옹과 달리 프랑스 배우나 무용수들과 협업을 할 목적으로 연출가나 안무가를 초청하지는 않습니다. 프로덕션 자체로, 제안한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전에 예술가들과 논의를 합니다. 공동 제작을 할 수 있지만, 투어를 기획하지는 않죠. 팀 내 그런 임무를 담당하는 팀이 없어요.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제가 직접 할 수는 있죠. 한국의 앰비규어스 댄스컴퍼니와 공연을 만들고, 비용을 아끼기 위해 프랑스 파트너 극장들에서 투어를 했었죠. 하지만 오데옹처럼 제작을 일임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오데옹은 제작할 경우 전체를 제작하고, 이후에 무대에 올리고 투어를 이어갑니다.
이화원: 한국 예술가들에게도 라 빌레뜨에서 작업할 적당한 기회가 있다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젤리: 네. 그런데 극단 전체가 레지던시를 해외에서 할 경우 비용 문제가 있어요. 더 비싸거든요. 많은 인원이 이동해야 하고, 파리에서 숙소를 제공해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극단에 돈을 주고 이곳 서울에서 스튜디오를 쉽게 구해 리허설을 하도록 지원을 해주는 편이 낫겠죠. 그렇게 하면 불필요한 이동을 피할 수 있죠. 그래서 이런 종류의 협업은 팀 전체가 오는 것보다 연기자가 한두 명인 경우, 소규모 팀에 적합합니다.
이화원: 오데옹은 어떤가요?
쥬이야르: 오데옹에는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없고 리허설 공간, 스튜디오 두 곳이 있는데 오데옹 자체 제작이나 공동 제작 공연을 위해 우선적으로 사용하고 나머지는 비공식적인 경로로 제공합니다. 사람들이 공간 사용 여부를 물어서 가능하면 빌려주곤 합니다. 작은 스튜디오 두 곳과 리허설 공간 하나가 있는데 거의 매일 사용이 되고 있어요. 라 빌레뜨 같은 제도는 없습니다. 메일로 ‘우리는 리허설 공간을 찾는다, 빌려 줄 수 있나?’, 이런 식으로 접근하면 비공식적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그 외에 제작과 공동 제작은 프로그램에 따라 결정합니다. 따로 오픈되어 있는 게 아니라 저와 극장장과 상의해서 프로그램에 따라 결정하죠. 스튜디오를 외부에 개방하지 않고, 레지던시 프로그램도 없습니다.
주목할 만한 현대 극작가
조만수: 텍스트 기반의 프랑스 현대 극작가들 가운데 한국에서는 베르나르-마리 콜테스(Bernard-Marie Koltès)가 성공을 했고, 장-뤽 라갸르스(Jean-Luc Lagarce)는 한국에서 반응이 유보적이었습니다. 그 이후에 프랑스 작가들 가운데 오데옹에서 주목하고 있는 프랑스 작가가 있다면 누구인가요?
쥬이야르: 유럽이나 프랑스는 십여 년 전부터 현대극에 대한 극단이나 연출가들의 관심이 많이 줄었습니다. 포스트 드라마나 무대적 글쓰기에 더 관심을 보이고 있습니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 전반적인 주류 트렌드입니다. 예술가들이 소설 일부나 영화 시나리오 일부, 다큐멘터리 인터뷰 등을 모두 혼합합니다. 현대 작가들이 두각을 나타내지 못하는 이유는 요즘 연출가들이 현대적인 작품을 무대에 올리고 싶어 하는 경우가 드물기 때문입니다. 프랑스의 경우는 떠오르는 작가들이 별로 없습니다. 5년이나 10년 뒤에는 바뀔지도 모르지만 요즘은 10년, 15년, 20년 전에 비해 현대 작품에 대한 관심이 많이 줄었어요.
마젤리: 소설을 각색해서 연극을 만들기도 하죠.
쥬이야르: 맞아요. 과거에는 드물었는데 요즘에는 소설이나 영화 시나리오를 연극으로 많이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게 혼합해서 작품을 만들죠. 오데옹에는 현대적인 작품이 거의 없고, 프로그램 절반 정도는 실뱅 크로즈보(Sylvain Creuzevault)가 연출한 2차 세계대전을 배경의 <에델바이스(Edelweiss)>나, 수잔 케네디의 <안젤라>와 같은 작품이 있고, 크리스티앙 루파의 <이민자들(Les Emigrants)>은 세발드(Sebald)의 소설을 각색했습니다. 그 밖에 레베카 샤이용(Rébecca Chaillon)이 <욕망이란 이름의 검은 카드(Carte noire nommée désir)>를 연출하고, 스테판 브라운슈바이크가 연출한 <기쁨의 날들(Jours de joie)>은 프랑스가 아닌 노르웨이 작가가 쓴 작품입니다. 이처럼 프랑스 작가의 몇몇 작품만 무대에 올려지고 있습니다. 제가 보기에 잘 될 가능성이 있는 작가로는 조엘 폼므라(Joël Pommerat)가 있어요. 해외에서 선보인 작품의 제목이 <두 코리아의 통일(La Réunification des deux Corées)>인데, 한국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안 좋게 끝나는 사랑 이야기입니다. 그 외에 클로딘 갈레아(Claudine Galéa)처럼 앞으로 더 성장할 젊은 작가들도 있죠. 그리고 플로리앙 젤러(Florian Zeller) 같은 작가들도 있습니다. 오데옹 국립극장 프로그램을 보면 크리스티앙 자타이의 <햄릿>이 있습니다. 원작의 구조는 유지하되 텍스트는 바뀌었죠. 고전이라고 여겨지는 텍스트도 자르고 재창조하는 추세가 보입니다. <안티고네>가 대표적인 예인데 제목을 유지하지만, 제목 외에 원작과 같은 게 거의 없죠. 마젤리 그웨나엘 모랭(Gwenael Morin)의 <꿈(Le Songe)>도 마찬가지로, 다 자르고 일부를 취해 1시간 40분 러닝타임 동안 완전히 재각색된 텍스트를 선보이죠.
이화원: 앙토냉 아르토(Antonin Artaud)의 영향일지요? 프랑스의 경우 원작 텍스트에 충실한 공연보다 무대 언어를 지향하며 텍스트를 재구성하는 시도가 주도적인 듯합니다. 반면 아일랜드, 스코틀랜드나 런던의 경우 원작 텍스트에 기반을 둔 작품이 여전히 주를 이루고 있습니다.
쥬이야르: 네, 텍스트를 유지하고 작가 전통이 훨씬 큰 나라들이죠. 영국에서는 텍스트와 배우가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무대적 언어의 비중이 주도적은 아닙니다. 반면 프랑스는 연출과 무대 표현에 더 관심이 많은 경향이 있습니다.
한국 대중문화의 영향
조만수: 요새 한국 대중문화가 서구사회에 많이 알려지게 되면서 대중음악, 영화, 드라마 등이 전 세계적으로 인기가 있습니다. 이런 현상이 한국의 순수 예술들 그러니까 문학이나 연극, 무용 이런 쪽으로도 확산될 분위기가 형성될 수 있을까요?
마젤리: 케이팝 콘서트를 즐기는 관객들이 연극을 보며 극장에 가나요? 안 그런 것 같습니다. 극소수만이 그럴 것입니다. 그렇게 확산되지 않을 것 같아 보여요.
조만수: 왜 그렇게 생각하나요?
마젤리: 파리 제니트(Zenith)에서 6,800 좌석이 매진된 대형 콘서트가 열립니다. 콘서트 관객들은 오른편으로 클래식 음악이나 현대 음악을 연주하는 필하모니 드 파리 앞을 지나고, 왼쪽으로는 무용 공연장을 지나가죠. 콘서트 관객들은 이런 공연장이 존재하는지도 전혀 모릅니다. 그러니 그 안에서 무엇을 하는지 관심도 없죠. 그냥 콘서트만 보고 그걸로 끝이죠.
쥬이야르: 콘서트마다 다르긴 합니다. 패티 스미스(Patti Smith) 콘서트처럼요.
마젤리: 패티 스미스는 정통 팝의 아이콘입니다. 케이팝 콘서트를 보러 가는 사람들은 패티 스미스를 모를 겁니다.
쥬이야르: 그렇긴 하네요. 하지만 요즘 연극 예술가들은 TV 드라마에서 많은 영향을 받습니다. 무대적 글쓰기도 드라마를 많이 시청한 젊은 세대에게 더 어필합니다, 음악을 듣기도 하지만 꼭 케이팝은 아닙니다. 어느 정도 관계성이 있기는 하지만, 대중문화를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다른 것 같습니다. 프랑스에는 아주 어린 세대가 케이팝을 좋아하죠. 15~20세 사이에서 케이팝이 매우 인기가 있습니다. 그들이 당장은 연극을 보는 관객은 아니지만 10년 후에는 모르겠네요. 젊은 세대의 경우 고등학교에서 단체로 연극을 보기도 합니다.
마젤리: 드라마도 영화도 마찬가지입니다.
쥬이야르: <기생충> 같은 영화를 본 관객이 연극 관객이 될 수 있지만, <기생충> 같은 영화는 대중적인 영화보다는 작가주의 영화에 가깝습니다. 프랑스에서 흥행했지만 그렇다고 수백만 이상 관객이 든 것은 아니죠. <스타 트렉(Star Trek)>은 아니니까요. (웃음) 관객들이 다른 문화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그 호기심이 무용이나 연극, 영화, 문학 등으로 표출되기도 하지만 그 문화가 대중적인 문화는 아니죠. ‘대중적(populaire)’이라는 단어는 항상 사용이 어려운 것 같아요.
관객들의 구성과 동향
조만수: 오데옹의 경우 6구에 오데옹 극장이 있고, 아틀리에 베르티에(Atelier Berthier)라는 소극장이 17구에 있는데, 이는 계급적으로 다른 관객들을 극장에 오게 하려는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런 전략들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지는지요? 프랑스 국립극장에 대부분 중년 이상의 중산층 부르주아들이 오는지, 아니면 다양한 계급, 더 젊은 관객들도 오는지 궁금합니다.
쥬이야르: 처음에 그런 의도는 없었습니다. 아틀리에 베르티에는 2000년 오데옹 주요 공연장 공사 기간 중 쓰기 위해서 만들었는데 공사가 끝나고 난 뒤에도 보존을 하였죠. 왜냐면 두 가지 다른 형태의 공연장이니까요. 오데옹 극장은 이탈리아 스타일입니다. 이탈리아 극장은 그 나름의 제약들을 지니고 있죠. 무대 폭이 12미터로 상대적으로 좁고, 공연장 높이와 배치가 예쁘긴 한데 제약들이 있어 가끔은 현대극이나 큰 무대를 필요로 하는 연극을 올리지는 못합니다. 반대로 아틀리에 베르티에는 450석을 갖춘 블랙박스 극장으로 그 안에서 다 할 수 있죠. 무대 연출 측면에서 매우 다른 것들을 제안할 수 있습니다. 17구에 있는 아틀리에 베르티에에서 현대적인 텍스트극이나, 무대적 글쓰기 작품을 많이 선보이고, 6구 오데옹 극장에서는 더 유명한 타이틀이나 레퍼토리가 되는 작품들이 올라갑니다. 이 두 가지를 종종 섞으려고 합니다. 예를 들어 종종 마리보 작품을 아틀리에 베르티에에서 하고 <고백(The Confessions)>같은 현대적인 공연을 6구 오데옹에서 선보이는 등 섞으려고 합니다. 관객이 ‘나는 6구만 가’, ‘나는 17구만 가’ 이러지 않도록 말이죠. 또한 아틀리에 베르티에 티켓이 조금 더 저렴합니다. 그런데 오데옹의 경우 좋은 좌석은 비싸지만, 높은 곳에 위치한 좌석들은 훨씬 저렴하죠. 이탈리아식 극장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17구라는 위치 외에도 타이들 덕분에 젊고, 연극을 좋아하고, 놀라움을 추구하는 관객들이 찾죠. 반면 6구에는 관광객들이나, 극장이 역사적인 기념물이기 때문에 사진을 찍기 위해 오는 사람들도 많습니다. 또 지방에서 오는 관객들도 있는데, 가령 이틀간 파리 여행 왔다가 오데옹이나 코메디 프랑세즈에 뭐가 있나 보러 옵니다. 그래서 6구에는 연극 마니아들이 상대적으로 덜 있죠. 오데옹 정기 회원인 관객 가운데 20~30% 정도는 아틀리에 베르티에에 한 번도 가지 않습니다. 그렇게 된 또 다른 이유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틀리에 베르티에의 경우 지하철로 가기가 쉽지 않았죠. 이제는 지하철 노선이 새로 생겨 접근성이 나아졌어요. 그런데 과거에는 주차할 곳도 없고, 너무 멀다는 말이 많이 나왔습니다. 그다음으로는 젊은 관객, 즉 30세 미만 관객 수가 상당한데 전체 관객의 30% 비중을 차지합니다. 대학생을 위한 티켓 할인 외에도 30세 미만 관객, 학생이든, 직장이 있든 할인 혜택을 줍니다. 처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 정규직이 아닌 경우도 있고, 연봉이 높지도 않으니까 이런 할인 제도를 만들었어요. 그 결과 젊은 관객이 상당합니다. 그다음으로 45세 이상이 많죠. 다른 프랑스 극장과 마찬가지로 그 사이에 있는 30~45세 관객들을 극장에 오게 하기가 어렵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는데, 관심사가 다른 데 있거나 가정을 돌봐야 하거나, 아니면 티켓이 너무 비싸다고 생각하기도 하죠. 연극을 보는 관객층 나이대가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30세 미만 관객도 여전히 많습니다. 종종 학교에서 단체로 오기도 하는데, 개별적으로 오는 청년들도 많죠. 또 라 빌레뜨와 마찬가지로 오데옹 극장의 관객들은 중산층 이상입니다. 지역적, 사회적으로 관객층을 넓혀 나가기 위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을 마련하고, 아틀리에를 열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효과는 제한적인 편입니다. 임금이 넉넉하지 않고, 문화생활을 즐기지 않는 가정의 사람들은 고학력자들이나 어렸을 때부터 문화 활동을 향유해온 사람들에 비해 극장에 자주 오지 않죠. 그런데 문제는 연극뿐만 아니라 무용, 영화, 도서관 등 문화에 대한 접근성이 안타깝게도 환경에 달려있다는 점입니다. 모두가 바꾸려고 노력을 하지만, 결과는 제한적입니다. 프랑스에서 중요한 논의 주제인데 프랑스뿐만 아니라 독일도 마찬가지입니다. 단순히 돈의 문제가 아니라, 학업 수준도 관련이 있죠. 교육이나 가족 내 문화적 습관, 사회적 출신 등과도 많이 연관되어 있습니다. 한국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화원: 한국에는 전반적으로 연극을 보러 극장에 오는 관객이 상당히 제한적입니다.
마젤리: 프랑스는 안정적인 편인데, 극장이든 페스티벌이든 대체로 잘 되는 편입니다. 2022년도 좋았고, 2023년에도 매우 좋았어요. 사람들이 극장을 찾고 있죠. 그렇지만 사회적 계층 측면에서는 매번 같은 계층에서 보러 옵니다. 쥬이야르가 말했듯 실제로 30세까지는 요금 할인이나 다른 혜택, 다양한 활동 등을 통해 극장에 오도록 하는데 성공했고, 노년층도 오래전부터 문화생활을 즐기는 것이 몸에 배어 있어서 지속적으로 공연을 봅니다.
쥬이야르: 퇴직자들의 경우 시간도 있고 돈도 있죠.
마젤리: 맞아요. 그런데 30세에서 50세까지는 많이 찾지 않죠. 라 빌레뜨의 경우는 그래도 다양한 관객층이 오는 편입니다. 여러 종류의 공연을 선보이고 있기 때문이죠. 하지만 그 관객층이 섞이지는 않아요. 연극을 보러 오는 관객이 무용을 보러 가지 않고, 서커스를 보러 가지도 않죠. 공연 종류에 따라 관객이 달라집니다.
이화원: 오데옹 극장에 오는 관객이 라 빌레뜨에도 온다고 보시나요?
쥬이야르: 비교를 하지는 않았지만…
마젤리: 관객에 있어서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아요.
쥬이야르: 수잔 케네디의 <안젤라> 같은 경우 기존과 다른 관객들이 관심을 보입니다. 조형 예술도 있기 때문이죠. 그리고 스페인에서 온 연출가 안젤리카 리들(Angélica Liddell)의 작품은 이벤트처럼 관객들을 오게 했습니다. 그 관객들이 다른 연극 작품을 보러 오지 않는 관객들입니다. 그들은 기존 연극과 다른 퍼포먼스를 보러 온 것입니다. 각 공연이 다른 관객층을 타깃으로 합니다.
마젤리: 전반적으로 고학력층 관객들이 많죠. 9월에 해변에서 리투아니아 오페라 공연이 있었는데 관객들이 전시회를 보러 가거나, 연극, 오페라를 보러 가는 관객들이었어요. 그 외에도 연극 공연과 무용 공연을 보러 오는 관객들이 다 다르죠. 그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기본적으로 문화생활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는 겁니다.
코로나 전후의 변화
이화원: 지난 몇 년간 인류를 강타한 코로나 전후로 공연과 관객에 있어서 어떤 차이가 느껴지는지요?
마젤리: 저희의 경우 큰 차이는 없는 것 같습니다.
쥬이야르: 올해는 호기심이 많은 관객들이 오데옹뿐만 아니라 다른 극장의 공연장을 다시 찾는 것 같아요. 작년 같은 경우에는 유명하고 확실한 공연들을 선호하고,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은 공연 직전에 예매를 했죠. 그런데 이번 시즌에는 더 많은 열기가 느껴집니다. 파리 날씨가 예년에 비해 요즘 더 좋아요. 전시회, 영화, 연극 등 이번 시즌에는 더 많은 관객이 들고 있죠. 다음 재해가 터지기 전까지는요.(웃음) 작년 프랑스의 경우 연금 개혁 때문에 시위가 많았어요. 파업도 많아서 타격을 입었는데 올해는 작년에 비해 사람들이 더 외출을 하고 싶어하고, 더 호기심을 표출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작년에는 포스트 코로나로 잘 아는 공연을 선호하고, 그 밖의 공연은 마지막에 예매를 하곤 했는데, 올해는 작년보다 더 분위기가 좋습니다.
마젤리: 이런 분위기가 계속 이어지기만 한다면야….
쥬이야르: (웃음)
마젤리: 사실 잘 되고 있어요. 라 빌레뜨에서 여름에 개최한 두 전시회도 큰 성공을 거두었죠. 수십만 명 관람객이 전시장을 찾아서 흥행 기록을 세웠어요. 라 빌레뜨 주변 필하모니, 제니트에서 열린 콘서트도 모두 성공적이었죠. 사회 계층에 상관없이 모든 관객들이 라이브 공연,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함께 보는 공연을 더 많이 찾고 넷플릭스를 덜 보는 것 같아요. 그 결과 넷플릭스 매출이 급락했죠. 이 말은 사람들이 2년 전이나 작년에 비해 넷플릭스를 덜 보고, 더 많이 외출한다는 의미로, 우리 같은 공연계 종사자들에게는 고무적입니다.
이화원: 우리나라의 경우 관객들이 극장을 다시 찾고 있지만 코로나 전과 후, 여러 가지 사회적, 문화적 맥락의 영향 때문인지 최근 어떠한 차이가 느껴집니다.
쥬이야르: 저희의 경우에는 잃어버렸다고 생각했었는데 올해 상황을 보면 되찾은 것 같아요.
아트 마켓을 통한 교류
조만수: ‘서울아트마켓’을 계기로 오셨는데 프랑스에는 비슷한 공연 아트마켓이 없나요? 한국 기획자들이 프랑스 작품을 구입하거나 사고 싶으면 말씀하신 페스티벌 외에 꼭 방문해야 할 마켓이나 페스티벌이 있는지요?
마젤리: 유럽과 비유럽에 두 가지 철학이 있는 것 같아요. 비유럽에는 앵글로 색슨과 아시아가 포함되죠. 어디에 속하느냐에 따라 사고방식도 다른 것 같아요. 앵글로 색슨 시스템에서는 호주나 퀘백, 뉴욕처럼 마켓이 있죠.
쥬이야르: 유럽에는 마켓을 통해 상인으로서가 아니라, 페스티벌을 통해 만납니다.
마젤리: 맞아요, 각자 부스를 차리는 마켓이라는 개념이 없어요.
쥬이야르: 개인적으로 아트마켓을 선호하지는 않습니다. 공연의 일부만을 보고 그 공연을 프로그램에 넣고 싶은 마음이 절대 들지 않거든요. 마켓에서는 서로 만나 명함을 교환하지만, 저는 페스티벌을 더 선호합니다. 타이베이에 갔을 때 20분씩 공연을 보여주는데 “작품 전체를 보여주세요”라고 했죠. 잠깐 보고 할 수 있는 게 별로 없어요. 페스티벌에 가면 공연을 보고, 이후에 관계자들끼리 만날 수도 있고, 회의나 미팅을 할 수도 있죠. 하지만 마켓에서 하는 스피드 데이팅이나 짧은 영상 관람으로 확신을 가질 수는 없어요. ‘아비뇽 페스티벌’에서는 전체 공연을 보고 무슨 공연인지 파악한 이후에 필요하면 관계자들과 이야기를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짧은 미팅을 했는데, 각자 15분씩 비디오로 프레젠테이션을 했어요. 개인적으로 설득되지 않았지만, 그래도 사람을 만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마젤리: 마켓에는 관계자, 종사자들이 많기 오기 때문에 그들이 무엇을 하고, 어떤 식으로 일하는지를 알 수 있다는 측면에서는 흥미롭습니다. 어떻게 작업하는지를 보면서 우리도 도움을 받을 수 있죠. ‘서울아트마켓’처럼 호주나 일본에도 이런 플랫폼이 있는데 마찬가지로 프로들이 많이 와서 주변 지역 종사자들과 교류할 수 있어요. ‘서울아트마켓’의 경우 아시아 지역, 방콕 등 예전에 몰랐던 곳과 새롭게 교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측면에서는 흥미롭습니다.
이화원: 시간이 넉넉하지 못하였지만 프랑스와 유럽의 공연 문화를 예시하고 있는 두 대표적인 기관의 현황과 국제 교류의 전개 및 우리나라 예술가들의 해외 진출에 대한 정보 등 유익한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었습니다. 촉박한 일정에도 기꺼이 인터뷰에 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남은 일정 동안 좋은 경험과 성과가 있으시기를 바라며 두 기관과 프랑스의 좋은 공연들이 지속하여 우리 관객들을 만나고, 또한 우리나라의 숨겨진 보석 같은 공연들이 프랑스의 많은 관객들을 만나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 본 기사는 계간 연극평론 111호(2023 겨울호)와 (재)예술경영지원센터 공연정보 플랫폼 더아프로(TheApro)에 공동 게재된 기사입니다.
프레데릭 마젤리 프로젝트 매니저, 예술감독 및 큐레이터이다. 다양한 공연 프로젝트를 수행했으며, 라 빌레뜨, 빌레트 소니크 페스티벌, 빌레트 뉴메리크 페스티벌, 샤티옹 극장을 포함하여 수많은 프로젝트 감독으로 활동했다. |
디디에 쥬이야르 프랑스 Odéon–Théâtre de l'Europe의 프로그래밍 디렉터로 콜린 국립극장의 사무총장(커뮤니케이션 및 홍보, 프로그래밍 담당)과 스트라스부르그 국립극장 사무총장을 역임한 바 있다. |
이화원 상명대학교 명예교수, 경계없는예술센터 대표. 『라신 비극의 새로운 읽기』 『연극으로 세상읽기』의 저자, 『몰리에르희곡선집』의 역자. 다양한 예술의 총화로서의 연극을 중심으로 일하고 살아간다. 객석이나 무대에서 누리는 빛나는 ‘순간’이 가장 큰 보상이다. |
조만수 충북대학교 프랑스언어문화학과 교수, 저서 『무대위의 책』, 역서 『무대』, 드라마터그 참여 작품, 연극에 대한 글을 쓰고 드라마터그로서 연극을 함께 만드는 일을 한다. 참여 작품은 <서교동에서 죽다> <창극 베니스의 상인들> <오슬로><햇빛샤워> <단테의 신곡> 등 50여 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