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아시아 마켓을 위한 네트워크 장의 필요성
박병성_공연칼럼니스트
2019년 영화〈어벤져스: 엔드게임〉이 27억 9,780만 달러 매출로 그동안 10여 년 동안 독보적인 매출 1위를 차지했던〈아바타〉의 기록(27억 9,043만 달러)을 깨고 최고의 매출액을 기록했다. 원화로 하면 3조 원이 넘는 액수다. 영화 한 편이 만들어내는 부가가치는 어마어마하다. 그러나 현재 단일 작품으로 최고의 매출액을 기록한 엔터테인먼트 상품은〈어벤져스: 엔드게임〉이 아니다. 그 주인공은 뮤지컬〈라이온 킹〉으로 전 세계에서 올린 매출액이 무려 82억 5,155만 달러(2019년 기준)이다. 한화로 9조 원가량 된다. 물론 애니메이션의 매출액은 제외한 순수하게 뮤지컬의 매출액만 합한 수치다.
뮤지컬〈라이온 킹〉누리집 (출처: lionkinginternational.com)
그다음이〈오페라의 유령〉으로 60억 달러, 3위〈위키드〉35억 달러, 4위〈캣츠〉28억 달러 순으로 모두〈어벤져스: 엔드게임〉보다 높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작품은 흥행이 끝난 것이 아니라 진행형이라는 사실이다. 코로나19로 약 1년 8개월간 공연을 올리지 못했지만, 위드 코로나 시대로 전환되면서 공연을 재개했다. 영화가 단기간 전 세계 수천 개 스크린에서 동시 상영된다면, 뮤지컬은 티켓 가격이 고가이면서도 수십 년간 공연이 가능하다. 브로드웨이 최장기 뮤지컬인〈오페라의 유령〉은 1986년 웨스트엔드에서 초연하고 1988년 브로드웨이에서 올라간 후 팬데믹으로 공연장이 문을 닫았던 2020년 초반까지 세계 공연의 상징적인 두 곳에서 무려 30여 년이 넘는 동안 공연을 이어왔다.
‘공연’과 ‘산업’이라는 말이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지만 세계적으로 성공한 뮤지컬 콘텐츠는 그러한 편견이 무색하게 엄청난 성과를 냈다. 앞서 말한 대로 뮤지컬이 막대한 수익을 낼 수 있었던 이유는 장기공연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전 세계에서 끊임없이 새로운 관객층이 유입되었기 때문에 이러한 성과를 이루어냈다. 뮤지컬이 산업으로서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글로벌화 되어야 한다. 특히 인구 5천만 명인 한국은 내수시장만으로는 규모의 경제를 이루기 힘들다. 한국 뮤지컬이 산업화되기 위해, 그리고 과열된 내수시장의 해결책으로 해외 시장 진출은 필수적이다.
한국 뮤지컬은 내수시장의 한계를 극복하고자 꾸준히 해외 시장 진출을 시도해 왔다. 가장 큰 공연시장인 영미권 시장 진출을 시도한〈난타〉와〈점프〉,〈브레이크 아웃〉은 넌버벌 퍼포먼스 형식으로 언어의 한계를 극복하려고 했다. 이들 작품은 에든버러 페스티벌 등 해외 공연 페스티벌을 통해 브랜드 인지도를 높인 후 세계적인 공연이 모이는 뉴욕의 오프 브로드웨이에 진출했다. 1년 가까운 상시공연을 통해 나름의 의미 있는 성과를 이루어냈지만, 영미 공연시장의 벽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디컴퍼니의 신춘수 대표나 CJ ENM은 프로듀서로서 브로드웨이 시장에 뛰어들었다. 신춘수 프로듀서는 해외 창작진이 참여한〈닥터 지바고〉를 올렸다. CJ ENM은〈킹키부츠〉의 6번째 공동 프로듀서로서 토니상을 수상하고 배당금을 받는 등 성과를 냈다. 최근에는〈물랑루즈〉의 공동 프로듀서로 참여해 두 번째 토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처럼 영미권은 아직 우리의 작품이 진출하기보다는 국내 제작자가 그 시장의 플레이어로 참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영미 공연시장에 우리 작품이 진출해 산업적인 성과를 내기에는 아직 이른 감이 있다.
뮤지컬〈닥터 지바고〉〈킹키부츠〉〈물랑루즈〉포스터 (출처: Playbill)
그러나 아시아 뮤지컬 시장의 경우는 다르다. 일본의 뮤지컬 시장은 규모로는 두 배 정도 크지만 창작뮤지컬 제작력은 높지 않다. 일본의 창작뮤지컬은〈테니스의 왕자〉나〈데스 노트〉같은 애니메이션을 원작으로 하는 2.5차원 뮤지컬 시장이 발달해 있다. 원작 콘텐츠의 팬들을 위주로 한 시장이며 상업 콘텐츠로서 글로벌 경쟁력은 약하다. 중국의 뮤지컬 시장 규모는 2.55억 위안(2017년 기준, 한화로 약 467억 원. Daolue Entertainment Industry Research Center 제공)으로 비교적 작은 수준이지만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대만 역시 서서히 대형 국공립 공연장을 기반으로 뮤지컬을 소개하며 조금씩 관심을 높여가고 있다. 한·중·일, 대만, 싱가포르, 필리핀 등 뮤지컬 공연이 가능한 아시아 뮤지컬 시장은 규모로도 브로드웨이와 대등할 뿐만 아니라 무한한 잠재적 가능성까지 지니고 있다. 앞으로 누가 아시아 시장에서 영미권 뮤지컬과 경쟁하면서 누가 시장의 주도권을 잡아가느냐가 관건이다. 뮤지컬 창작 인프라나 뮤지컬의 제작 능력, 그리고 전 세계 문화 열풍인 한류의 훈풍까지 생각한다면 한국이 아시아 뮤지컬 시장의 허브가 될 가능성이 크다. 이미 일본과 중국 시장에 진출하는 한국 뮤지컬이 해마다 늘어가고 있다. 2021년 팬데믹 상황에서도 일본에서 한국 뮤지컬 6편이 라이선스 형태로 공연했으며, 중국에서는〈미아 파밀리아〉,〈미오 프라텔로〉,〈우주대스타〉등이 전용관을 마련하고 상시공연을 진행하고 있다.
K-뮤지컬국제마켓 (출처: (재)예술경영지원센터)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영미권 뮤지컬과 경쟁할 수 있도록 창작뮤지컬의 작품 경쟁력을 높이는 한편, 영미권의 체계적인 선진 공연 투자 및 제작 프로세스를 익히고 반영해 좀 더 대형 뮤지컬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라 원 아시아 마켓을 만들기 위해 아시아의 뮤지컬 프로듀서와 창작진이 꾸준히 소통해야 한다. 일단은 한·중·일을 중심으로 한자 문화를 공유하는 아시아권에서 교류를 늘려가고, 넓게는 새로운 콘텐츠에 목말라 하는 영미권까지 시야를 넓혀 전 세계 공연계가 한국 뮤지컬에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장을 마련해야 한다. 네트워크 플랫폼은 작품을 소개하고 유통하기 위한 아트마켓이자, 글로벌한 창작자들이 교류하고 의견을 나누는 제작, 개발의 소통 창구이며, 원 아시아 마켓의 필요성을 공유하고 실질적인 교류를 위한 전 세계 제작자들의 커뮤니케이션 장으로서 역할을 해야 한다. 이번 (재)예술경영지원센터에서 진행하는 ‘K-뮤지컬국제마켓’이 원 아시아 마켓을 형성하기 위한 초석이자 나아가 글로벌한 공연시장으로 나아가기 위한 교두보가 되길 바란다.
월간〈공연전산망〉편집장이자 공연 칼럼니스트. 뮤지컬 전문지〈더뮤지컬〉의 편집장을 오랜 동안 지내왔다. 현실과는 다른 무대에서 펼쳐지는 삶의 이야기에 관심이 많고, 무대의 생생한 감동을 어떻게 글로 잘 옮길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다.
저서로는〈뮤지컬 탐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