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아프로 포커스

2023 SPAF 안무가 인터뷰 ➀ 김성훈 2023-11-29
 

감각의 경험으로 전달되는 일상과 몸의 전환, 그리고 그 국면들, <조동>
 

 

인터뷰어: 조형빈_무용비평가
인터뷰이: 김성훈_안무가


왼쪽부터 김성훈, 조형빈 ©더아프로

한국을 대표하는 국제공연예술축제, 2023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 Seoul Performing Arts Festival)가 약 한 달간의 긴 여정 끝에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올해로 23회째를 맞이한 서울국제공연예술제는 동시대적 관점과 시대적 가치를 담아내는 국제 공연예술 축제라는 새로운 비전과 미션을 구현하기 위하여 총 19편의 다채로운 공연 프로그램을 선보였다.
 
이번 더아프로에서는 서울국제공연예술제를 빛낸 다국적 예술가 가운데 인간 본연의 움직임을 무대화하고, 블랙 코미디를 이용한 휴머니즘적 작품으로 자신만의 춤 언어를 완성해 나가고 있는 안무가 김성훈을 만나보았다.



인간에 의한, 인간을 위한 춤, 안무가 김성훈
 
조형빈: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김성훈 안무가님께서는 이번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조동이라는 작품을 올리셨는데요. 오늘은 해당 작품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먼저 어떤 활동을 해오셨는지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리겠습니다.
 
김성훈: 안녕하세요, 현대무용 하는 김성훈입니다. 장르를 가리지 않고 오페라나 한국무용, 발레 같은 다양한 분야에서 안무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무용수로서도 많이 활동했었고, 현재는 무용수 겸 안무가로 여러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최근 했던 작업으로는 사회 안에 묶여 있는 소외계층을 다룬 2019년의 Pool이라는 작품과 계산될 수 없는 무의식에 관한 이야기를 했던 Mind seeker, 학교 폭력에 관한 이야기를 다룬 올해의 작품 그리멘토등이 있습니다.
 
조형빈: 다양한 사회적 이슈들을 작업의 주제로 다루어 오신 것 같습니다. 이번 SPAF에 공연된 조동은 재연이었는데요. 작품 제목 조동에는 어떤 의미가 담겨있나요?
 
김성훈: 20221월에 공연했던 작품을 1년 반 정도가 지나 재연하게 되었습니다. ‘조동에는 여러 가지 뜻이 있어요. ‘조급하게 움직임의 의미도 있고, ‘초겨울을 뜻하기도 하고 제각기 다른 한자로 읽어낼 수 있는데, ‘조동이라는 하나의 단어가 포괄적으로 여러 의미를 포함할 수 있도록 설정했습니다.
 
앞서 제가 작업했던 여러 작품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지만, 사실 저는 작품에서 제 개인적인 이야기를 잘 하지 않는 편이에요.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제 이야기를 많이 담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정신없이 일을 하고 있는데, 이런 상황에서 저 스스로가 변해가는 과정이 목적만을 향해 달려가는 현대인의 모습과 겹쳐 보였어요. 그렇게 달려가면서 인간의 모습이 아닌 괴물이 되어버리는 상황을 이야기하고 싶었고, 그러면서 관객들도 스스로를 다시 한번 되돌아볼 수 있는 공감의 기회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조형빈: 무용수들이 많이 등장하기도 하고, 개별 장면(scene)이나 세세한 동선, 의상과 같은 부분들에서도 상당히 많은 디테일들이 보였는데요. 이번 작품에서 특별히 해보고 싶었던 것이 있다면 무엇이었을까요?


김성훈 안무 조동© 2023 SPAF / 사진 옥상훈
 

김성훈: 저에게는 작품의 시작부터 눈이 쌓여있는 하얀 들판의 이미지가 강하게 다가왔었어요. 그래서 자세히 보셔야 알 수 있는 부분이지만, 모든 군무에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그림자가 존재합니다. 실제로 조동안에는 100개가 넘는 대단히 많은 큐가 있거든요. 거의 혼자 하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로 디테일이 많은 작업이에요. 이 디테일들을 볼 수 있으려면 두 번 이상 관람을 하셔야 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말이죠. 이번에 재공연을 하면서 작품을 한 번 더 보신 분들은 그런 부분들이 보여서 좋았다고 말씀해 주시기도 했습니다.
 
작품의 메시지적으로는 코로나 시기에 많은 영향을 받은 것 같아요. 코로나 때문에 고립되어서 혼자 있어야 할 때 스스로 어떻게 살았나를 돌아보았더니, 정말 바쁘게 살아왔던 제 일상이 떠오르더라고요. 그렇게 느꼈던 감정이 출발점이었는데, 사실 그 시기에는 모두가 공통적으로 느꼈던 것이기도 하죠. 그래서 그때 발견했던 것들과 코로나 이후에 다시 일상생활로 돌아오면서 반복되는 부분, 변화한 부분들을 짚고 작품으로 표현해 보고자 했습니다.
 
 
()과 백()으로 표현한 우리의 이야기,
 
조형빈: 작품 안에 나타났던 것들에 관해서 이야기를 좀 해보겠습니다. 말씀하셨던 것처럼 강렬한 색상의 대비가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작품처럼 보이거든요. 이처럼 극명하게 대비되는 색상을 활용하신 것은 어떤 것을 끌어내고자 한 의도에서였나요?
 
김성훈: 개인적으로도 원래 흰색과 검은색의 조합을 좋아해요. 예전에도 다른 작품에서 시도한 적이 있었는데, 그때에는 의도처럼 잘 되지 않았었어요. <조동>을 준비하면서 그때 생각이 났고, 지금은 조금 더 능숙하게, 새롭게 알게 된 것들을 활용해서 표현해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처음 콘셉트는 화이트와 블랙으로 나누어지는 조명과 의상으로부터 출발했어요. <조동>에서 중요한 이미지 중 하나가 겨울의 쓸쓸함인데, 흰색이 그것을 표현하는 데 가장 좋다고 생각했고요. 어떤 오래된 것들을 맥락에 넣기 위해 흑백 영화 같은 느낌을 주고 싶기도 했습니다. 블랙 앤 화이트가 가지고 있는 세련미도 활용해 보고 싶었고,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것 같아요.



김성훈 안무 조동© 2023 SPAF / 사진 옥상훈
 

첫 장면에서 어두운 조명 아래에서 무용수들이 흐릿하게 보이는데, 마치 꿈처럼 보였으면 했어요. 저는 그 부분을 악몽이라고 부르는데, 이 파트에서는 모든 동작에 의미를 두고 작업했습니다. 기존의 제 움직임과 다른 동작들이 많이 나왔던 부분이거든요. 뒷부분에서 검은색 옷을 입고 나오는 부분은 일상을 표현하고자 했어요. 일상생활의 제스처들을 컨템포러리하게 변형하였고, 자기가 힘든 상황을 인지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을 참고 계속 지속하는 저의 모습을 투영해서 입에 재갈을 무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무용수가 방 안에서 솔로를 추는 부분은 방 안에서 스스로가 변해가는 모습을 고통스러워하는 것을 담고자 했는데, 단계별로 몸의 움직임이 이상해지는 것을 표현했고 음악에 맞추어 괴물이 되는 것이 공감대를 만들어 냈던 것 같아요.
 
조형빈: 솔로와 군무 장면(scene)이 끝나고 무대 위에 남은 한 명의 무용수로부터 검은 원이 흘러나와 종국에 무대를 덮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는데요. 셋업이 쉽지 않았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김성훈: 홀로 남은 무용수가 톱니바퀴처럼 뛰지만 지쳐있는 자신의 모습을 깨닫는 순간, 검은 구름이 덮으면서 일종의 충격이 되는 연출을 하고자 했어요. 영상을 활용한 짧은 장면이지만 그걸 맞추는 데 6시간이 걸립니다. 검은 원이 마지막에는 무대를 다 덮을 수 있도록 영상의 크기와 음악을 조절해야 하거든요. 굉장히 공을 많이 들인 부분이에요. 이 장면에는 소리와 미장센, 일종의 체험으로써의 공허함을 관객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어둠을 통해 생각이 깊어지고 다른 감각들이 발달되는 과정을 만들고 싶었고, 그렇게 암전 된 상태에서 희미한 불빛이 들어오면서 환상이 깨지고 다시 나를 생각하는 것으로 돌아오는 마지막을 구성하고 싶었습니다.
 
가장 마지막 부분에는 거울처럼 두 명의 무용수가 손을 맞대면서 끝나는데, 관객들도 자기 자신을 바라보는 상상을 해보면 어떨까 싶었어요. 제가 작품을 통해서 저 자신을 바라보았듯이, 관객들도 각자의 상상 속에 있는 자기 모습을 바라보는 감각을 공유하고 싶었어요. 어찌 보면 조금 슬픈 내용이라고도 할 수 있겠네요.


김성훈 안무 조동© 2023 SPAF / 사진 옥상훈
 

조형빈: 확실히 인상적인 미장센들이 많았고, 저도 몇 가지 장면들이 계속 머릿속에 남아있습니다. 감각으로 공유되는 메시지들의 힘이 분명하게 작동했다고 봅니다. 작품을 하시면서 힘들었던 부분이나, 혹은 안무가로서 스스로 아쉬웠던 부분 같은 것도 있으셨나요?
 
김성훈: 아쉬움은 늘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원래 심플한 방식의 작업을 선호하는데 이번 작업은 생각보다 많이 복잡해졌거든요. 그래서 고생을 했지만,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다는 것은 확신할 수 있어요. 관객들이 보시기에 부족해 보이는 것들이 있을 수 있겠지만, 이번 작업을 통해 배운 것들을 가지고 다음 작품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품 내적으로는 시간이 좀 더 있었다면 디테일한 부분들을 더 많이 시도해 볼 수 있었을 것 같아요. 작업에 참여한 모든 분들이 많은 노력을 기울여 주셔서, 저 자신도 더 여유 있는 사람이 되어서 풍부한 생각으로 더 나은 작품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작업의 메시지도 그렇지만, 쫓기는 삶이 아니라 한번 되짚어 보고 생각할 수 있는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입니다. 시간이 지남으로써 예술을 되돌아보고 그것을 통해 내가 변화해 나갈 수 있는 것이 예술이 가진 힘이라고 생각해요. 공연이 당장 어떤 즉각적인 변화를 주는 것은 아니겠지만, 이 에너지를 받아서 언젠가 문득 떠올랐을 때 그것을 통해 삶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음을 느끼는 시간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작업은 저에게도 좋은 기회가 된 것 같아 감사할 따름입니다.
 
조형빈: 말씀 잘 들었습니다. 현재도 다양한 작업을 준비 중에 계신 것으로 알고 있는데, 또 어떤 작업을 보여주실지 기대가 됩니다. 오늘 나누어주신 흥미로운 이야기들 가슴 속에 잘 담으면서, 인터뷰는 여기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김성훈
 
안무가 겸 무용수인 김성훈은 LDP(한국), 아크람 칸 댄스 컴퍼니(영국)의 무용수로서 국내외 활동을 활발히 하였으며, 안무가로서 본인 자신의 움직임을 강요하기보다는 인간 본연의 움직임을 무대화하는 작업을 가장 중요시한다. 무용수 각자 특유의 움직임을 존중하고, 주제에 따르는 일반인들의 일상 움직임들을 조사한 후 두 가지 현상을 콜라주(collage) 기법을 이용해 감각들을 서술하여 하나의 이미지 장면들을 구성하는 안무 작업을 해오고 있다.
 
 

 
조형빈
 
공연을 보고 글을 쓴다. 사회학과 문화연구를 전공하고 무용월간지 , 웹진 in등에서 기자와 편집위원을 지내며 다양한 매체에 동시대 무용에 대한 비평글을 기고/발표하였다. 몸과 움직임이 사회와 연결되는 '정치적인 몸'의 순간들에 관심이 있으며, 몸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것을 해석하는 일을 주로 해왔다. 비평지 에디토리얼 콜렉티브 널의 편집장을 맡고 있다. @hyeongbin_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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